역사

가도사건- 인조 1년, 가도에서 명, 후금, 조선 사이에 벌여진 사건

페르소나12 2023. 5. 16.

1623년(인조 1년) 가도를 중심으로 명, 후금, 조선 3 나라 사이에 벌어진 사건

 

1621년(광해군 13년) 청 태종이 요양을 공함하자 명의 요동도사(遼東都司) 모문룡(毛文龍)은 요동에서 쫓겨 의주(義州)로 와서 이듬해 가도에 진(鎭)을 세우고 동강진(東江鎭)이라 칭하며 철산(鐵山)·사량(蛇梁)·신미도(身)에 그 분진(分鎭)을 두었다. 이때 조선 조정에서는 크게 기대를 가지고 명과 연합하여 청을 견제할 목적으로 암암리에 연락을 취하였다. 이 섬의 주민은 1621년(광해군 13) 경부터 중국 하동(河東) 방면에서 이주하여 왔는데 모문룡은 이들로 군대를 조직하여 나가서는 싸우고, 들어와서는 경작(耕作)을 시켰다. 모문룡은 청군의 배후(背後)를 자주 기습하였으므로 청 태종은 1627년(인조 5)에 조선에 침입함과 동시에 가도를 습격하여 도문릉을 신미도로 몰아내었으나 청군 철병 후 모문룡은 다시 가도에 웅거(雄據)하여 양식이 떨어지면 조선의 육지로 나와 대명인(大明人)의 행세를 하며 약탈을 자청(恣行)하였다. 따라서 조선 조정에서도 점차 그를 싫어했다. 한편 명나라에서도 처음에는 모문룡을 신임하여 총병좌도독(總兵左都督)의 직을 주어 청을 정벌케 하였으나 요동으로 출전ㆍ실패하고 오히려 역효과가 나므로 요동경략(遼東經略) 원승환(崇煥)은 1629년(인조 7)에 여순(旅順)의 쌍도(雙島)로 그를 유인하여 죽였다. 이로써 조선·청 (後金)·명나라 사이에 미묘하게 움직이던 가도사건은 일단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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